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오로 6세 (문단 편집) === 생명 수호에 힘쓰다 === 1968년 7월 25일에 교황의 상당히 유명한 회칙 중 하나인 '인간 생명(Humanae vitae)[* [[https://cbck.or.kr/Documents/Pope/400195?gb=title&search=인간%20생명|출처]] ]'을 발표했다. 이 회칙은 사회적으로 비중있게 다뤄지기 시작한 산아제한 등의 문제에 대한 것으로, 인공적인 산아제한과 [[피임]]은 반생명적인 것이며 [[낙태]]는 야만적인 살인행위임을 주장하는 [[가톨릭]] 교회의 기존의 가르침을 고수하였다. 이 회칙이 반포되자마자 가톨릭 교회 안팎으로 비난여론이 들끓은 건 당연지사. 당시 반대론자들은 전근대적인 발상이라며 강하게 비난하였으며[* 엄밀하게 말하면 현재도 이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신자들이 상당수 존재한다. [[http://www.catholicnews.co.kr/news/articleView.html?idxno=20281|참조]]] 독일 주교들은 이 회칙이 무오류의 가르침이 아니며 각 개인은 자신의 양심을 따라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“쾨니히스타인 선언”(Declaration of Konigstein)을 발표하여 피임법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평신도들 개인의 양심에 맡겼다.[* [[https://www.casuwon.or.kr/info/news/church/52853|관련 링크]] ] 언론계의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. 그의 시복식과 세계 주교 시노드 임시총회 전까지만도 언론은 그를 '보수적이고 반동적인 인물'로 묘사해왔는데, 시노드 이후에는 동성애 & 이혼 인정 여론에 편승해서[* 알다시피 시노드 동안 동성애를 수용하느냐 마느냐 등의 문제로 시끌벅적했다.] '교회 개혁에 앞장선 진보주의자'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. 바오로 6세가 교회 개혁에 힘쓴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교리 등을 바꾸려 한 것은 아니었고,[* 그와 같이 [[제2차 바티칸 공의회]] 역시 그런 오해를 흔히 받는다.] 오히려 윤리 도덕면에서는 전형적인 가톨릭의 입장을 그대로 계승하여 세속 여론의 질타를 받기까지 한 인물인데, 이제와서는 되려 언론에서 개혁가로서의 면모만 부각시키니 아이러니. 물론 이러한 부분은 [[요한 바오로 2세]] 같은 인물의 경우에도 벌어진 일이었지만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